점 같은 걸 볼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는데, 직장의 여러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점을 보러 가길래 나도 관심이 생겼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어느 곳이 잘 맞추나 신내림 받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잘 본다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점 볼 만한 곳을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트위터(!)에서 신기한 계정을 마주치게 되고, 디엠을 보내 ... 여차저차 ... 삼성동까지 가서 점을 보게 되었다. 그 계정 주인 분께 보면 어떨까 싶었는데 본인은 법당 주장대신 할머니(?)께서 아직 기도 중이시라 손님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고 .. 삼성동 큰 법당으로 모시겠다고 하여 알겠다고 했다. 자기보다 더 정확하게 뽑아준다고 했다.

 

 디엠을 한 것은 2월 27일, 보러 간 것은 28일. 오후 두 시에 가기로 했다. 느즈막히 일어나 열두 시 조금 전부터 나갈 준비를 했다. 한 시간 정도 걸리길래 조금 일찍 나가려고. 멀리 나가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데, 오직 점을 보기 위해 삼성동까지 간다는 것이 약간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은 춥고 어두웠다. 돌아다니고 싶지 않은 날씨.

 

 간신히 두 시에 딱 맞춰 도착했고, 도착할 무렵에는 한두 방울씩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법당은 빌라인지 아파트인지 잘 모르겠는, 아마 빌라인 것 같은 건물의 지하였다. 계단을 내려가자 두 개의 문이 있었고, 왠지 무당이라면 내가 문 앞에 선 것을 알아차릴 것만 같아 조용히 숨을 고르고 머리를 만지고 초인종을 눌렀다. 그 계정의 주인이 문을 열어주었다. 길이 막혀 조금 늦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디엠을 했던 터라 '그래도 시간 맞춰서 오셨네요,'라는 인사를 들었다. 신발을 벗고 왼쪽으로 들어가니 원형의 좌식 테이블이 놓인 거실과 부엌, 방문 2개가 보였다. 들어가자 마자 점을 봐주기로 한 분이 '돈까스가 온 줄 알았네,'라고 해서 마음속으로 몹시 당황했다. 나는 시간 맞춰서 오려고 얼마나 빠르게 걸어왔는데 문 앞에 사람이 온 것을 알아차리기는 커녕 돈까스가 온 줄 알았다고? 두 시에 사람을 만나기로 했으면 밥을 먼저 먹든가 해야 하는 것 아냐? 하지만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고... 앉아야만 할 것 같아서 그녀를 마주하고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녀는 검은 머리를 높이 묶고 있었고, 금으로 된 액세서리를 많이 하고 있었다. 눈화장이 약간 인상적이었는데 펄이 별로 없는 마젠타를 베이스로 깔고 짙은 청보라색으로 포인트를 준 것 같았다. 베이스를 베이스라 부르기 어려운 것이, 아이홀을 다 덮고 관자놀이 쪽으로 뻗어나가는 모양이라 저걸 베이스라 불러야 할까 포인트라 불러야 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피부가 하얀 편은 아닌데 저런 색도 잘 어울리네, 섀도우는 어디서 샀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이라인은 검은 색이었고, 눈썹도 검은 색이었는데 모양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거실에는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고 소리가 꽤 컸다. 내가 앉자마자 그녀가 얼굴에 그늘이 졌네, 라고 말했다. 아, 제 얼굴에 그늘이 졌나요? 하하 하고 웃었다. 옆에 제자(계정주)를 바라보며 봐봐, 얼굴에 그늘이 졌지? 안경 썼잖아 라고 했다. 제자는 끄덕끄덕. 그러더니 갑자기 나한테 '잡귀가 붙었네,' 라고 했다. 제자는 옆에 앉아서 자기도 마음이 막 쫓기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조금 놀랐는데, 그냥 으레 하는 말일까 하고 생각했다. 그 다음부터는 귀찮아서 대충 기록해봄.

 

그녀: 집에 있다 왔어? (뜬금)

나: 오늘요? 나오기 전에 집에 있다 왔냐구요?

그녀: 아니, 어디 갔다온 데 없냐고.

나: 언제요? 오늘이요?

제자: 최근에 장례식장 같은 데 다녀오신 적 없으세요?

나: (휴대폰 다이어리를 뒤져봄) 결혼식 다녀온 거 말고 없는데요...

그녀: 여행 같은 거 안 갔다 왔어?

제자: 이번 겨울에 어디 안 다녀오셨어요?

나: 아, 11월에 동생이랑 일본 다녀왔어요.

그녀: 거 봐, 어디 갔다왔잖아. 아무 때나 막 여행다니고 그러면 안 돼.

제자: 여행도 가야 할 때가 있고 가지 않아도 될 때가 있어요. 일본은 특히 잡귀들이 많아요. 정말 바글바글해요.

그녀: 왜 갔다왔어?

나: 동생이 곧 군대 가서.. 가기 전에 그냥 놀러 갔다왔어요.

그녀: 왜 일본으로 갔어?

나: 아 그냥 별 이유는 없고요, 아빠가 세미나 같은 거 다녀오셨는데 엔화가 많이 남아서 그냥 일본으로 갔어요.

그녀: 그럼 결국 아빠가 붙여준 거네.

나: 아 그런가요 핳하

 

하고는 왜 여기에 왔는지 그런 걸 물었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점을 보는 건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더라. 정적을 견디기 힘들어 제자에게 이제 제가 여쭤보면 되는 건가요, 하고 물었더니 다른 방에 가리키며 선생님(무당)께서 '법당'에 들어가 신씻김(?)을 받으면 보는 것이라고 했다. 광고나 텔레비전에서 보는 화려한 그곳을 '법당'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날 처음 알았다.

 

 그녀가 방에 들어갔고 알 수 없는 소리가 났다. 사탕 같은 걸을 먹는 듯하더니 투닥투닥하는 소리가 들리고, 애기 목소리로 심통을 부리는 듯 화를 내다가 '인간을 먹어야지(?!), 어쩌고 저쩌고 인간을 먹어야지(?!)'라고 했다... 그러더니 '들어오떼여!' 라고 ... ... ... 일단 들어갔다. 좀 가까이 앉았더니 애기 목소리로 좀 뒤로 가라고, 가까이 앉으면 부담스럽다고 말해서 얌전히 뒤로 가 앉았다. 오방기를 펄럭대며 주문 같은 것을 외우더니 사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서울이라고 했더니 한양시요? 네 한양시요. 서울 어디냐고 물어서 원하는 곳까지 얘기해주었다. 사주를 묻길래 양력으로 말하고, 양력인데 괜찮아요? 라고 했더니 음력으로 말해야죠! 양력으로 말하면 재미 엄떠요! 해서.. 네.. 그럼 제가.. 잠깐 검색해볼게요... 하고 네이버로 음력변환 검색해서 말해주었다. 사주를 말하자마자 알 수 없는 글씨를 쓰더니 처음 한 말이 머리가 좋아요, 머리가 좋은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어요! 였던가.. 그리고 앞뒤로 고진살이 있네요, 이것 때문에 너무너무 외로워요! 앞에도 하나 뒤에도 하나 있으니 너무너무 외롭고 마음이 항상 힘들어요! 뭐 이런 식으로 말했다. 내용은 어쩐 일인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마음속으로 동자승이라니 너무 뻔하네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하는 말을 들으니 왈칵 눈물이 나 멈출 수가 없었다. 왜 울었지. 위로 받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눈물을 참자 크게 울어요! 동자 앞에서 울면 마음이 시원해져요! 라고 해서 아 신개념 카운슬링인가 생각했다. 여튼 점사 내용을 대충 정리해보자면 고진살 앞뒤로 하나씩 두 개가 있고 가운데 천파살이 있어서 돈이 샌다. 이걸 막으려면 대수대명을 해야 한다. 사주에 돈이 많은데 서른 넘어서 차차 들어오기 시작할 거고, 사건 사고가 많이 생기는데 내가 그걸 돈으로 다 막는다고 했다(이건 완전 틀린 것 같은데요). 남편복도 많고 자식복도 많은데, 올해가 잔나비 해라 고진살이 하나 더 늘어 세 개, 지금 연인과는 이별할 수 있고, 헤어져야 한다고도 했다. 서른 전까지 만나는 남자는 내 남자가 아니고 서른 둘에 만나는 사람이 내 사람이라고 하더라. 성격이 너무 꼼꼼하고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야 하는 사람이라, 콩 심은 데 팥 나면 큰일 나는 사람이라 고진살이 더 강화되기도 한다고 했다. 올해는 특별히 사람을 조심하고 3,4월이 제일 안 좋고 5,6월 물가에 가지 말라고 했다. 올해는 이직하지 말고 공부하지 말고 지금 직장에 다니라고. 시기가 바뀌면 이직해도 될 수도 있지만 올해는 옮기지 말라고 했다. 승진 욕심 낼까요 가늘고 길게 다닐까요 했더니 가늘고 길게 다니라고 하더라. 속으로 이건 그냥 자기 가치관 아니야? 라고 생각했다. 스물 여덟에서 서른 두살 사이에 갑상선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수명이 짧다고 했다. 사람이 살면서 열두 번의 죽을 고비가 있는데 올해 그 고비가 있다고도 했다. 내가 법당에 들어가기 전에 그녀가 먹은 것은 말랑카우였다. 점사 보는 도중에 '이거 쫀득쫀득해서 맛있어요!' 이런 말도 하고 밖에 앉아있던 제자는 '네^^ 많이 드세요^^!!' 이러고.. 나한테 중간에 하나 먹으라고 하고 나는 이이거 지지금 먹을까요.. 네 감사합니다.. 이러고 먹고. 으으. 아, '우울증이 오고 있다'고 해서 가고 있는 게 아니라 오고 있어요? 제가 지금 스무 살 이후 유례 없이 정서 상태가 좋은데. 라고 했더니 오고 있다고 거듭 강조해서 말했다. 더 깊은 우울이 오고 있다는 뜻인가. 더 물어볼 것 없냐기에 생각이 나지 않아서 없다고 했다. 내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 탁자에 놓인 쌀을 헤쳤다가 두 알씩 나눠 모으며 '귀티 나게는 살겠네,'라고 했고.

 

뭐, 신기한 경험이었다. 마지막에 오방기를 돌돌 말아 깃대 쪽을 나에게 보이며 두 개를 뽑으라고 했는데 녹색과 하얀색이 나왔다. 어떤 뜻이냐고 물었더니 녹색은 우울증이 온다는 뜻이고 하얀색은 대수대명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과 대수대명을 하라는 것이 미심쩍어 집에 오는 길에 오방기 뜻을 찾아보니 얼추 맞는 말이기도 한 것 같았다. 녹색은 검은색을 대신한 것으로 좌절, 병, 객사, 근심 이런 것으로 볼 수 있고 하얀색은 조상님에게 치성을 드려야 한다는 그런 뜻이라고 하네. 이건 내가 뽑은 건데 점사 내용과 비슷하게 나와서 신기했다.

 

 점을 다 보고 나와 바로 옆의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웠다. 굵은 눈이 오고 있었다. 또 한참을 걸려 집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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